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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거짓말 +1


아름다운 거짓말

리사 엉거 지음, 이영아 옮김 / 비채
나의 점수 : ★

일단 읽는 재미는 있는 편인데,
읽고 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난다. 솔로생활이 오래되어 삐뚤어진 청춘들에게는(특히 여성) 비추, 남성들은 얘가 뭐하나 이해가 안 갈 듯.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아름다운 거짓말, 카피는 '네가 내 딸이냐?' 를 걸고 있다.
저 문구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은 이 정도.
*주인공은 여자다
*잘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사실은 내가 네 아버지다... 라는 식으로 누군가 등장한다.
*스릴러물을 출간하는 시리즈이므로 분명히 하드보일드한 사건 한 두개는 얽혀있을 것이다.
(대충 조직간부의 숨겨진 딸이라던가 사실은 부모가 범죄자였다던가 사생아였던 주인공이 사고를 쳤는데 부모가 유명인이었다던가..)

딱 이 정도를 예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이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스릴러물을 가장한 '로맨스' 소설이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인 주인공, 아버지는 의사고 어머니는 아름다운 가정주부(절대 흐트러지는 일이 없는 미인)이며 세상에 둘도 없이 좋아하는 오빠는 삐뚤어진 마약중독자로 뉴욕의 험한 동네에 살고 있어 주인공의 인생에 험난한 굴곡을 살짝 더해주고 있으며 의사이자 자상하고 친절하고 잘생긴 남자친구(그것도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로 양가 부모와, 심지어 주인공도 남자친구 어머니와 매우 친하다)는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차버리고 혼자서 잘 살고 있다. 게다가 독신 변호사였던 삼촌은 매우 돈이 많아 어느 빌딩의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었으며 자살한 후 펜트하우스와 유산의 대부분을 주인공에게 거의 다 상속해 주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해줘서 선행을 한 젊은 여성으로 뉴욕 신문에 대서 특필된 이유로 심지어 영웅 취급을 받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얼굴을 알아본다. 그 후 살짝 위험해보이며 동시에 섹시한 조각가가 자신이 세들어사는 건물의 위층에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네가 내 딸이냐?'라는 쪽지와 함께 자신을 꼭 닮은 여성과 알 수없는 남자가 함께 찍힌, 오래된 사진이 배달되어 오는데... 

 이 책에서 미스테리나 스릴러라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다. 누군가 총을 빵빵 쏴대서 주인공의 생부라 밝힌 남자를 죽이기는 하는데,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인공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양부모를 비롯해 주위에 좀 있다고 치자. 그게 뭐?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혐의를 받고 있다고 치자. 그건 좀 좋지 않는 사실이니 창창한 젊은 애 앞날에 방해가 된다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을 하더라도, 그건 주인공에게나 안 좋은 거지 주변 사람들은 별로 상관이 없다. 주위에서 호들갑 떨지 말고 잘 위로해주면 그만이다. 게다가 의외로 주인공은 어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에게 별 감정도 유감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는다.

 입양된 과정이 불투명하고 범죄에 가까워서 그게 나쁜 일이었다고 해도, 그게 주인공을 죽이려고 드는 이유가 되기엔 왠지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삐뚤어져서 그런 걸까? 좀 낌새를 눈치챘다해도 친부모 친자식이 아닌 걸 눈치까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이가 30이 되가도록 그렇게나 철저하게 사실을 숨기고 눈치도 못 채는 게 그렇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왜 입양된 애들을 죽여야 하는데? 애들을 거래하는 범죄조직이 있다면 사실을 분 놈을 찾아서 때려잡아야지. 주인공이 사실을 밝혀내고 호들갑을 떠는 게 문제라면, 총 들고 쫓아다니거나 수상하게 침묵하지 말고 사실은 이래저러해서 이랬단다 하고 설득을 해야지.

하여간 이 책에서 미스테리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있다면 납득이 안가는  소위 저놈의 범죄조직뿐.

그리고 가장 비중이 높은 미스테리는 사실 주인공이 반해버린 위험한 남자 정도다. 섹시 다이너마이트인 조각가는 사실 거친 어린 시절을 보내 사립탐정을 겸하고 있는게 그나마 반전이지만 앞에 복선을 엄청 뿌려놔서 눈치 못 해면 바보~ 라는 식이다.
 위험하지만 나를 사랑해 뭐든지 들어주는 데다가 터프하고 (흉터도 여기저기) 야성적이고 유능하고 잘생기고 섹시하고...  뭐 그런 전형적인 순정만화 식이다. 오죽하면 귀여니의 소설들과 보고나서 너무 기억에 남아버린 뱀파이어 소설인 '트와이라이트'가 생각났을까.

장점이라면 여자 심리를 엄청 섬세하게 잘 묘사했다는 것. 글발도 훌륭하고 특히 변덕부리는 여주인공의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마치 여성과 남성의 핀트가 벗어나는 대화를 보는 듯하면서, 동시에 남자들이 이 여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바로 쫓아와서 사과한다던가 조용히 나가준다던가 하는 비현실적인 면이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 사실과 환상의 접목이 기가 막힐 정도이다.

 예를 들면, 오빠가 산다는 위험한 뉴욕거리를 간다고 하자(지명은 다 까먹었다. 난 뉴요커가 아니다) 섹시한 새로운 남친(조각가이자 사립탐정)이 말리다가, 그럼 같이 간다고 한다. 혼자 갈 수 있다고 주인공이 말한다. 남자가 말린다. 여자가 발끈한다.
내가 무슨 어린애야 일일이 따라오게? 나도 혼자 갈 수 있어!! 남자 왈 그러니까 내 파이어버드로 태워다 준다니까. 됐어!
여자가 매우 속상해 하며 뛰쳐나간다. 그러면서 남자가 안 따라나오나 살짝 기대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한참 간다. (안 따라왔으므로 또 화가 나있다.)
정작 그곳에 도착하니 남자가 차를 몰고 기다리고 있다. (....!!!!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여자가 또 획 삐진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하면서 그냥 옆을 지나쳐서 걸어간다. 남자가 차를 살살 몰면서 따라간다. 여자가 계속 안 돌아보고 걸어간다.
결국 남자가 항복, 미안해. 이러자 응 이러면서 차에 타고 사이좋게 배고프니까 햄버거 먹으러 가자고 한다.

... 이런 것이 책 여기저기에 깔려있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판타지라 생각한다. 의사 부모와 의사 약혼자, 변호사 삼촌이 남겨준 펜트하우스와 유산이 없는 싱글 여성에게는 하등 도움이 안되는 연애 판타지 되겠다. 이 책에서 진정한 판타지는 저 새로운 남자친구다. 왕자(와 머슴)가 따로 없다.

진정한 뉴요커의 (재정적으로 빵빵한)스릴과 로맨스를 맛보고 싶으신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글발이 훌륭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읽는 동안은 사실 꽤 재미있었다.
뉴욕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젊은 여성 작가가 다음 번에는 뉴요커가 주인공이 아닌 책을 낸다면 정말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