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icLibrary


1. 책장 사이사이에 털이 끼어 있을때.

.....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라고 절규하면서 동생이 털을 무지하게 털어낸 책이 있었다. 올해 여름 이야기다.

워낙 시끄럽게 털어대서 구경도 (....) 했지만.

그 더러운 책을 내가 바톤 이어받아 읽었긴 했지만, 오늘 내가 빌린 책에도 털이 끼어 있더라.

신체 어느 부위 털인지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은 나의 상상력이 어느덧 재빠르게 상상하고 있을 때, 결국 스스로에게 분노하게 된다.



2. 쓸데없는 문장에 온통 줄이 쳐져 있는 경우.

몇 년 전 이야기이지만, 제임스의 '나사못 회전'을 빌려서 읽은 적이 있다. 심히 남부끄러운 삽화가 그려져 있는 버전이었다. 본래 긴 책도 아니지만, 누군가 매우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있었다. 본래 심하게 개의치 않는 성격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지만,
(동생이 손도 대기 싫다고 했던, 털이 무수히 껴있었던 책도 잘 읽을 수있었던 것을 보면 신경이 무딘지도.)

.... 읽다 보니 줄쳐져 있는 문장들에 묘하게 신경이 쓰이면서 종반에는 이런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 자기 인터넷 소설에 갖다 쓰려는 모양인데?!!!'

 
'나사못 회전'에 나오는 부분 중에서도  당시 상류 사회층에 대한 묘사에만 줄이 가있는데, 그 줄만 합쳐도 단편 소설 하나 나오겠더라. 판타지에 써먹어도 지장없겠고. 귀족집 고용인들에 대해서 묘사하고 싶을 때는 다 갖다 쓸수도 있겠다.
굳이 '인터넷 소설'(혹은 인터넷에 올리는 소설들)이라고 쓴 이유는, 전문 작가라면 자료는 구입하거나, 적어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줄을 치지 않겠지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런 근거없는 망상을 하는 자신이 서글퍼질 때는 차라리 범인 이름에 줄을 치라고 쓸데없는 저주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오늘도 발견하고 말았다.

현란한 글빨 때문에 좋아하는 조르지오 팔레띠 소설을 빌려왔는데, 하필이면 야심만만한 유색인종 젊은이(물론 남자)가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양성애자(라기 보다는 아내가 있는 동성애자) 화랑 주인을 유혹하는 결정적 순간에 

페이지가 접혀있다!!! (흔히 영어로 '강아지귀'라 불리는 그것)

이 사실을 이야기해주자 동생님 왈.

'좀 이상한데. 씬을 여러 번 읽는 건 몰라도 접어놓는 건.'

 도서관 가보면 실감한다. 로맨스 소설 코너에서, 가만히 책을 집어 책등이 아닌 반대편 책장 부분을 가만히 바라보면, 씬이 어느 페이지에서 어디까지 되는지, 몇 번이나 등장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다 읽기도 전에 책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찾았다.

바톤은 데스크 위에 있던 노란 포스트잇 용지를 집어 재빨리 번호를 써서 그에게 건넸다.
"포리 씨가  뭐든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 엉덩이만 빼고요."
"고맙네, 바톤.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내가 머리가 썩은 동인녀라 치자. 눈에 저런 거만 보이는  수도 있지만, 역시 저도 모르게 저주가 튀어나오는 거다.

'차라리 범인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있는 페이지를 접어놔!!!!'

스릴러를 읽을 때 '쓸데없는' 문장과 페이지는 결정적 추리와 상관없는 부분을 말한다.
오늘 읽으려는 팔레띠 소설에도 참 많이 접혀있었다. 아마도 그 부분들을 언제 어디선가 BL 소설에서 볼 수도 있을 지 모른다는 확신이 든다. 아님 말고.

좋아, 로맨스 소설과는 달리 동성애 부분을 매우 좋아하는 독자가 있어 후에 읽는 이들에게도 길이 안내자가 될 수 있도록 (혹은 씬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특별히 책장을 접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럴거면 책등에도 아예 써놔서 널리 알리던가.

하지만 책장이 뭉개질 정도로 접지는 말아줘요.
일단은 빌린 책이잖아.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다는 걸 좀 신경써 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제발 털만은.
(후략)